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잉베이 말름스틴 (문단 편집) == 여담 ==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cQANhRXDDt0,width=480,height=360)]}}} || || '''잉베이의 기타 콜렉션''' || * 기타월드지에서 그의 자택에 방문하여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겸사겸사 그의 기타 콜렉션들이 영상을 통해 공개된 적이 있다. 거의 대부분이 [[스트라토캐스터]]인 한 편, 중간중간 [[깁슨]]제 기타들이나[* 잉베이 본인 유튜브 채널에 깁슨 플라잉브이를 연주하는 쇼츠가 올라왔는데 잘 보면 싱싱싱 조합에 트레몰로 브릿지까지 박힌 비범한 물건이다.] [[스티브 바이]], [[브라이언 메이]] 등 동료 음악가들에게 선물로 받은 기타들도 보인다. 이 콜렉션에서의 최고 백미는 영상 5분 9초부터 등장하는 '''[[1954년]]에 생산된 오리지널 스트라토캐스터'''인데, 잉베이의 설명에 따르면 이 스트랫은 [[1954년]] [[3월]]에 제작된 개체로, 가장 최초로 제작된 10대의 스트라토캐스터 중 한 대라고 한다. * 그가 주목받기 시작했을 무렵, '''[[깁슨]]'''에서 [[엔도서]] 제의가 들어왔었으나, 잉베이 본인이 '''"난 펜더 기타만 써."'''라며 거절했다고 한다. 그러자 깁슨에서 뭐든 만들어 줄테니 말만 해달라고 하자 잉베이가 농담 삼아 '''"[[스트라토캐스터]] 한 대만 만들어줘."'''라고 말했는데, 몇 달 뒤 자신의 집으로 '''깁슨 로고가 박힌 [[Stratocaster|스트랫]]'''이 배달되었다고 한다(...) 그 기타는 잘 보관하고 있다고. * [[2001년]]에 내한공연과 함께 사인회를 가진 적이 있는데, 이때 어떤 고딩 팬이 사인을 받으러 가져간 미펜 57 리이슈 스트랫을 보더니 자기 기타와 바꾸자며 가져가놓고는 나중에 미펜도 아니고 '''일펜에서 나온 본인의 저가형 시그네쳐 스트랫'''을 보내줬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잉베이의 인성질 얘기가 나오면 가장 먼저 나오는 이야기 중 하나이다.[[https://www.dogdrip.net/372547118|#]][[https://www.mule.co.kr/m/guide/1384070|#]] * 눈을 잘 보면 [[오드아이]]이다. * 펜덕후이기도 한 그는 [[페라리]]덕이기도 하다. 그래서 위에 이펙터 사진을 보면 페라리 엠블럼 스티커를 붙혀놨다. * [[롤렉스]] 시계를 엄청나게 좋아하는데, 언제 어디서나 무조건 롤렉스 시계를 착용한다. 한 인터뷰에서 “어렸을 적에 할아버지가 롤렉스를 수집하셨는데, 그 피가 이어진것 같다.”, “꼬마때 백화점에 진열된 롤렉스 시계를 보고 꼭 가지고 말리라 생각했었다.”라고 언급했다. * 가장 좋아하는 음악가는 [[딥 퍼플]], [[지미 헨드릭스]], [[퀸(밴드)|퀸]]이라고. * 살이 엄청 쪘음에도 불구하고 리즈시절 때 입던 가죽 바지라던가 바로크풍 와이셔츠[* 바로크 풍의 와이셔츠는 자기 가문에 내려오는 스웨덴 귀족 의상으로 미국에서 활동중에 뵙지 못하고 죽은 어머니가 살아 생전에 미국에 가는 잉베이보고 단정하게 멋진 옷 입고 부자나라에서 기 죽지 말라고 준 것, 포기하지 못할 만 하다.]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심지어 앞가슴의 단추는 다 풀어 놓고 다닌다. 사실 이런 이유때문에 메탈의 인기가 죽은 90년대 이후부터 그의 평소 행동이나 보이는 이미지를 80년대의 촌스러운 이미지로 고정시키는데 크게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 유명한 [[미빠|미국뽕]]이다. 미국에 와서 1주만에 운수가 텄기 때문에 미국이라는 나라를 매우 바람직하고, 기회가 열려있으며 아름다운 국가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그의 미국 사랑은 너무나도 지나쳐서 [[도널드 트럼프]]에 비견될 정도. 이 때문인지 정치 성향도 보수적인 것으로 추측되는데 [[스웨덴]]의 [[사회민주주의]] 복지 체제를 혐오하고 기회의 나라 미국은 바뀔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아무래도 원래 [[얀테의 법칙]]이 지배하는 경건하고 모두가 복지제도의 혜택을 받으며 비슷한 삶을 살 수 있는 스웨덴의 삶을 포기하고 미국 음악씬에 도전할 정도로 성공욕과 야심이 큰 사람인 만큼, 모국까지 버리고 날아온 그의 꿈을 단번에 이루게 해준 미국의 자유경쟁주의를 신봉하는 것은 어느정도 당연하고 잉베이 본인의 의견과 상관없이 [[스웨덴]]을 비롯한 북서유럽권에서도 복지 체제 개혁을 요구하는 여론은 좌우를 막론하고 무시하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애초에 그릇이 스웨덴에 있기에는 너무 티나게 달랐던 인물인건 확실하다. 미국의 진보층 인사들 중에서도 미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기회가 열려 있다는 미뽕 사상을 가진 사람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기도 하고[* 미국 시민은 아니지만 역시 [[미뽕]] 성향의 영화인인 [[롤란트 에머리히]] 역시 상당히 진보적인 정치 성향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잉베이의 경우 미국으로 이주하던 시점에 이미 국제적으로 인지도가 높아서 어느정도 부를 축적한 상태였기에 때문에 체감하기 힘들겠지만, 각종 사회보장제도를 이용하는 데에 어려움이 많으면서 동시에 스웨덴인들에 비해 결코 세금을 적게 내는 것이 아닌[* 주마다 다르겠지만, 연방세만 내고 주정부에서 따로 세금을 걷지 않는 [[텍사스]]를 예로 들더라도 잉베이 수준의 고소득자는 약 40% 가량의 소득세를 지불해야 하는데, 자국인 스웨덴에 비교해도 결코 적은 수준이 아니다.] 미국 서민들이 북유럽식 복지 제도를 매우 부러워하는 경향도 있다. * 공연 때 양손에 [[반지]]나 [[팔찌]], [[손목시계]] 등을 엄청 차고 연주하는데 이것이 잉베이가 얼마나 대단한지 잘 보여준다. 반지의 경우 손가락 사이가 자유롭지 못하면 연주할 때 상당히 방해가 되고, 왼손은 지판을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손목시계조차 연주에 부담스럽지만 잉베이는 이것을 상관하지 않을 정도라는 이야기이다. --손가락 하나에 반지를 두 개나 끼우고--잘만 연주한다. * 두 번의 [[이혼]] 경력이 있다. [[스웨덴]]에서 살던 시절 스웨덴의 팝 뮤지션 에리카 노르베르그와 결혼했다가 이혼했고, 미국으로 온 뒤에는 앰버 다운 랜딩과 결혼했다가 결국 안 좋게 끝났다.[* 마이크 베세라가 보컬로 있던 시절에 앰버가 베세라와 바람을 피웠다고 한다. ] 현재는 에이프릴 말름스틴 사이에 아들 안토니오 말름스틴을 두고 잘 살고 있다. * [[신해철]]의 [[고스트스테이션]]에 따르면 [[2001년]] 내한 공연 당시 [[이태원동]]에서 [[롤렉스]] 짝퉁을 30개나 사가서 주위에 돌렸다고 한다. A급 짝퉁이었던지 선물받은 모두가 진퉁인줄 알고 감격했었다는 후문. * [[1992년]] [[2월]]에 서라벌 레코드사 주최 내한공연이 [[뉴 키즈 온 더 블록]]의 내한 공연 중 사망 사고로 인해 취소 된 적이 있다. * [[2013년]] [[5월]]에 자서전이 나왔다. [[http://www.amazon.com/Relentless-Memoir-Yngwie-J-Malmsteen/dp/1118517717/ref=sr_1_1?s=books&ie=UTF8&qid=1364359413&sr=1-1&keywords=yngwie+malmsteen+relentless|링크]] * [[2015년]] [[11월]] 10~11일 [[서울]] [[한남동]] 언더스테이지에서 내한 공연을 가졌다. 실제 공연에서 [[김기동]] 짤방을 아는 이들이 단체로 김기동을 연호하기도 했다는 전설이... [[파일:external/2.bp.blogspot.com/Generation%2BAxe%2B-%2BSFBAC%2B-%2B2016-04-08%2B-%2B8.jpg|width=500]] * [[2016년]]에는 [[스티브 바이]]가 초청해서 [[누노 베텐코트]], [[Animals as Leaders|토신 아바시]], [[잭 와일드]]와 미 전역을 돌며 '''Generation Axe 투어'''를 다녀왔다. 그런데 팬들 기겁할 만한 장면이 있었으니... [[파일:external/files2.soniccdn.com/13103544_10153620193023479_372255138507885561_n.jpg|width=300]] 그 유별난 [[펜더]] 꼰대가 [[아이바네즈]], 그것도 [[메탈 코어]]나 [[젠트]]같은 모던한 장르에서나 쓴다는 '''토신 아바시의 8현 기타 프로토타입'''을 갖고 놀고 있다. 거울에 비친 토신의 해맑은 미소가 압권이라고 할 수 있겠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nubg3OfO28k,width=1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iP_5OK8ulUI,width=100%)]}}} || * [[2021년]]에는 본인 유튜브 채널에 [[깁슨]] [[Les Paul|레스폴]]과 [[플라잉브이]]를 연주하는 영상을 올려서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다. 레스폴은 기본적인 세팅이지만, 플라잉 브이는 픽업도 [[스트라토캐스터]]와 유사한 싱글 코일 픽업 세트로 바뀌어 있고, 지판에도 스캘럽 처리가 되어있는 것으로 보인다. 분명 둘 다 스트랫은 아닌데, 잉베이 특유의 그 톤은 그대로 나는 것이 특이한 부분. 이로써 잉베이 본인 스스로 ''''잉베이의 곡을 커버하려면 스트라토캐스터를 사용해야 한다.''''라는 명제를 뒤엎어버렸다.[* 사실 펜더가 잉베이 시그니처를 최초로 낸 시기가 솔로로 성공하고도 좀더 뒤인 1988년이라, 이미 1982년부터 일류 기타리스트로 지명도를 얻기 시작한 잉베이가 그 사이 다른 기타를 안 썼을리가 없다. 솔로 데뷔전 잉베이는 꽤 여러 회사의 기타를 썼고 심지어 그가 그렇게 혐오한다는 험버커 달린 기타도 잘만 썼다. 데뷔 초창기에는 일본 브랜드인 Aria Pro, 심지어 ESP의 랜덤 스타를 쓰기도 했으며 레스폴이나 플라잉 V의 일제 카피를 쓰기도 했다. 펜더와의 계약 전엔 쉑터의 엔도서로도 활동했었다.] * 사실 잉베이가 팬더만 좋아하고 나머지 악기 브랜드들은 싫어한다고 알려진 것과는 인터뷰에서 본인 스스로 [[깁슨]]제 기타들을 딱히 싫어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다만 펜더 기타랑은 좀 다른 취급을 한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깁슨 기타가 '좋은 악기'라면, 펜더 기타는 ''''몸의 일부''''라고 표현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